미라주 F1


미라주 F1은 특이하게 프랑스 정부의 지원이나 의뢰없이 다쏘의 자체적인 자본으로 개발된 기종입니다. 수평꼬리날개 없이 델타익만 달린 미라주 III와 달리 고익형의 주익에 수평꼬리날개가 조합된 좀 더 안정적이고 일반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단거리 이착륙 성능 때문으로 미라주 III에 비해 착륙 속도와 착륙 거리가 20% 정도 감소했다고 합니다. 또 좀 더 가혹한 조건의 활주로에서도 사용하기 위해 랜딩기어도 한 쪽당 2개의 바퀴를 붙이는 형태로 강화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전장의 열악한 환경의 활주로에서도 운용이 가능했습니다. 가벼운 무게와 빠른 상승속력을 지닌 미라주 F1을 프랑스는 프랑스 공군에서 요격기로 운용했습니다.
엔진의 교체와 동체 내에 연료탱크의 확장으로 미라주 III 대비 연료탑재량은 40% 가량, 전투행동반경은 1.8배가 증가하였으며 기존의 매직 단거리 미사일과 지상공격용 폭탄 외에 마트라 쉬페르 530F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여 BVR 교전이 가능했으며 엑조세 대함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어 퍼포먼스에서 초기형 F-16A/B형과 비견됩니다.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의 전투기로 평가됩니다.


미라주 F1은 이렇게 준수한 성능을 지녔지만 해외수출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F-16이라는 걸출한 성능의 전투기가 수출 시장에 나오는 바람에 F-16에 밀렸습니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이 기존의 F-104를 대체하는 NATO 공용 전투기를 채택하는 사업에 미라주 F1과 F-16이 경쟁했는데 최종적으로 해당 사업에서 F-16이 선정되었고 이후 유럽을 넘어서 전세계로의 수출길이 크게 열렸습니다. 미라주 F1이 탈락한 이유를 분석해보자면 미라주 F1 자체가 50~60년대에 등장했던 미라주 3, F-104, MiG-21 같은 전투기들과 이들이 참전한 2, 3차 중동전쟁의 전훈을 통해 만든 전투기인데, 이와 달리 F-16은 베트남 전쟁의 전훈을 통해 10년 정도 앞선 최신 전투교리로 만들어졌고 성능면에서도 미라주 F1이 F-16보다 특출나게 나은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미라주 F1의 초도비행은 베트남전 초창기인 1966년에 이루어졌으며, F-16의 초도비행은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발을 뺀 뒤인 1974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0년 가까운 시기차이가 나는 미라지 F1의 개발 컨셉이 F-16에 비해 시기상 뒤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며 따라서 진보한 컨셉과 FBW 등의 신기술이 탑재된 사업당시의 F-16의 선정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당시 전투기 사업의 선정에는 NATO의 수장국이었던 미국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게 정설입니다. 해당 사업의 결과로 유럽국가인 벨기에,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가 F-16을 차기 전투기로 선정했습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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