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91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 일본 육군은 카와사키 항공기(川崎航空機)에 대하여 장거리 전략폭격기에 관한 소요 제기를 바탕으로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그 무렵 일본 육군항공본부는 이미 일본 제국 해군의 G5N 신잔(深山) 폭격기를 육군 사양에 맞춰 개수한 Ki-85(キ85)의 연구 개발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Ki-85는 1943년 7월에 원형기의 성능이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와 개발 중지가 결정되었습니다.
나카지마 비행기(中島飛行機)가 이끌던 육군의 중폭격기 개발이 중단됨에 따라, 육군항공본부는 카와사키 항공기에 Ki-91이라는 장거리 전략 폭격기의 개발을 명령했습니다. 카와사키에도 도이 다케오(土井武夫 : 1904~1996) 기사 같은 재능있는 엔지니어가 있었고, 곧 개발주임으로 임명된 그는 설계팀을 총동원하여 4발 중폭격기 개발에 달라붙었습니다. 사실, 카와사키 개발진들은 자체적으로 1943년 6월부터 기초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카와사키에서는 일직선 형태의 외형을 가진 신잔의 기체 디자인을 참고하여 재설계하고 1944년 4월과 5월에는 각각 2회에 걸쳐 실물 모형에 의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단계까지 기초 설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도이 다케오 기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실물이 아닌 모의 평가 결과는 아주 우수했으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카와사키 사는 기후현(岐阜)에 시작기 제작을 위한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고 1944년 6월에 공장이 완공되자 먼저 생산 라인을 위한 설비와 제작 비품의 설치를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카와사키 내부적으로는 프로토타입 1호기 완성은 1946년(쇼와 21년) 6월로 스케줄이 잡혔으며, 2호기는 1947년(쇼와 22년) 3월에나 완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미군은 일본 본토에 대한 전략 폭격에 본격적으로 나서 기후현 소하라역에 세워진 조립 공장도 공습 표적이 될 것이 예측되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생산 체제를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전황이 돌변하자 육군은 Ki-91의 개발 중단을 검토하게 되는데, 종래는 1945년(쇼와 20년) 2월에 모든 개발과 시제기 제작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계획이 중단된 싯점에서 Ki-91의 설계는 60% 까지 진행되어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런 군의 조치가 없었다 하더라도 해당 폭격기는 1946년 중반에나 비무장 상태의 1호기가 겨우 완성될 예정이어서 전쟁의 향방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습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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