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50


그루먼 사가 미 육군 항공대에 추격기로 납품하기 위해 개발한 쌍발 단좌 전투기입니다. 세계 최초로 쌍발 단좌 함상전투기로 시험 제작된 XF5F 스카이 로켓을 육군에 제의한 형식이 곧 XP-50이었는데, XF5F 채용이 불발되고 발주처인 해군이 아닌 육군이 관심을 보여 육군 차기 추격기 사업의 후보가 됩니다.
사내 명칭 G-41로 불린 육군 추격기의 프로토타입은 해군형인 XF5F에 비해 1년 반 더 늦춰져 1941년 5월에 완성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서유럽에서 미증유의 전쟁이 터진 후였습니다. XP-50은 겉으로 보기에는 길다랗게 늘어난 기수만 빼고는 XF5F과 거의 같았으나 테일 드래거 방식의 착륙 장치가 전륜식으로 바뀌었고, 노즈 기어의 수납을 위해 기수를 더 늘리고 기체 전체의 실루엣은 더 유선형에 가깝도록 매끈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루먼의 개발진들은 육군이 이 전투기에 흥미를 가진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상승 성능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격기로 쓰기 좋도록 최대출력 1,200마력에 터보차저를 갖춘 Wright R-1820-67 공랭식 엔진을 장착했고, 조종석과 연료 탱크에 대한 방탄 설비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정 무장으로는 20mm 기관포 2문과 12.7mm 중기관총 2정을 예정하고 있었습니다.


육상기지에서는 전혀 필요없는 날개를 접기 위한 폴딩 기구와 어레스팅 훅 같은 착함 관련 설비들을 전부 없애자 무게가 단숨에 200kg이 넘게 줄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이미 그 효과가 의문시되던 공대공 폭탄을 위한 날개 내부의 소형 폭탄창 같은 설비도 없애버렸습니다. 프로토타입 1호기인 39-2517(40-3057)의 첫 비행은 1941년 2월 18일에 시작되었는데요. 시제기의 조종은 설계와 개발, 그리고 시제기 제작에까지 두루 참여한 로버트 홀(Robert L. Hall : 1906–1991)이 직접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3월 14일의 롱아일랜드 상공에서 실시된 전력 테스트 비행에서 과급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좌우 비대칭 추력 현상을 극복하지 못한 시제기는 통제를 잃고 그대로 추락해버렸습니다. 기체는 바다에 수장되었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테스트 비행을 진행하고 있던 로버트 홀은 낙하산으로 무사히 탈출해 구조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XP-50은 더 이상의 개발이 중지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차 대전 중에 그루먼 사에서 유일하게 만든 육군기이자, 해군과 육군이 함께 쓰려고 했던 전투기는 역사 속에 묻혔지만 그루먼이 이것을 만들면서 쌓은 내공과 기술은 후계기인 F7F 타이거캣에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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