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B-35


미국 노스롭 사가 1940년대에 전익기 개념을 적극 받아들여 개발했던 폭격기입니다. 1943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1946년에 첫 비행을 했지만, 1949년에 스크랩 처리되었습니다.
프랫 & 휘트니의 R-4360-17/21 성형엔진을 4기 장착하며 각 엔진에서는 3,000마력의 출력을 냈습니다. 항공역학적으로 쓸데없는 동체를 없애 무게를 줄이고 동체에 날개 뿌리 부분의 구조물 강화도 필요 없었으므로 더욱 경량화가 가능했고 따라서 항속거리는 무려 6,400km에 달했으며 익면하중을 줄여 폭탄 적재량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방어무장으로 20정의 12.7mm 기관총을 장비하며 B-29의 거의 세배에 달하는 23,678kg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 당시에는 대형 폭탄이나 핵의 탑재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으나 나중에 육군 항공대 측의 요청으로 탑재가 가능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문제는 당시 미국이 2차대전 중 거의 이기고 있었다는 점닙니다. 전황이 급박하면 대서양 건너 나치 독일이 Me 264를 개발한 것처럼 이런 고성능 무기로 판 뒤집기를 시도했을 테지만, 미군이 이기고 있다 보니 이런 신무기 개발에 소극적이고 대신 이미 잘 활용하고 있는 무기들의 생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노스롭 사 역시 미군의 이런 요청에 따라 XB-35의 개발 보다는 기존 생산하던 항공기 생산에 주안점을 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설계는 노스롭이 하였으나 실제 제작은 이미 공장이 풀 가동중인 노스롭 대신 글렌-마틴 항공사에서 200대를 생산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허나 이렇게 설계사와 제작사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기술적 어려움이 생겨났고, 그나마 계속 생산이 지연되어 XB-35의 최초 비행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인 1946년에나 가능했습니다.


허나 비행시험 도중 문제가 속출했습니다. 강력한 엔진에 맞춰 한 엔진당 2개의 프로펠러가 한 축에 연결되어 반대 방향으로 도는 이중반전 프로펠러를 사용했는데, 이 복잡한 시스템이 계속 진동을 일으켜 말썽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여 프로펠러를 보통 프로펠러로 바꿨으며 이 때문에 이륙 거리가 늘어나고 상승률과 최고속도가 줄어들었습니다. 더불어 엔진이 항공기 내부에 깊숙히 박힌 형상이다 보니 배기구 문제도 중요했는데, 이것도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제대로 배기가 되지 않거나 몇 번 비행시험 하지도 않았는데 금속피로 문제가 생기는 등의 기술적 어려움이 속출, 결국 미군은 전쟁이 끝나서 대량생산 계획은 취소해버리고 대신 이미 제작된 기체들은 연구용으로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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