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4
P-64는 1939년 노스 아메리칸 사에서 제작한 해외 수출용 전투기입니다. 사내 호칭 모델 NA-50으로 불린 이 경전투기는 완전히 새로 개발하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모험을 하는 대신, 이들이 최근 만들어내 판매에 호조를 보이고 있던 T-6 텍산 훈련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텍산은 당시 훈련기로서는 최고급 사양으로, 전금속제 저익 단엽기에다 랜딩기어가 접히는 고급 기능까지 있어서 엔진을 강화하고 무장을 추가하면 충분히 경전투기로 탈바꿈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긴 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39년 5월에 원형 1호기가 공장 활주로에서 첫 시험비행에 성공을 거두자, 마침 국경을 마주대고 있던 에콰도르와 불편한 관계로 지내고 있던 페루가 즉시 7대를 구입했습니다. 이때 페루 공군이 인수한 NA-50들은 토리토(Torito, 작은 황소)라고 불리며 1941년 7월 5일에 터진 에콰도르-페루 전쟁에서 싸우게 됩니다. 근 한달 간 계속된 이 분쟁에서 수없이 출격을 반복하며 페루 육군을 지원하면서 활약을 펼친 토리토는 2대가 에콰도르군의 대공 사격에 의해 격추되긴 했으나 페루 조종사들에게 노스 아메리칸제 항공기의 뛰어난 품질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조금 뜻밖이지만, 이 NA-50이야말로 훗날 미 공군에 가장 많은 전투기를 공급하게 된 노스 아메리칸 사가 처음 만들어낸 전투기였습니다.
페루가 NA-50을 사간 후 몇 개월이 지난 1939년 12월에는 태국 왕립공군이 군용기 견학과 구입을 면담하기 위해 미국으로 조사단을 파견했는데, 이 때 NA-68로 불린 개조형을 태국이 6대 구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NA-68 6대가 태국행 수송선에 선적되어 하와이에서 출항을 기다리게 되었지만, 이 때는 이미 유럽 방면에서는 나치 독일에 의해 2차 대전이 발발한지 1년여가 흘렀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방면에서는 일본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던 탓에 미 의회는 군용기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표하며 항공기술이 잠재적 적국에 넘어가는 사태를 막고자 했습니다. NA-68의 경우, 만에 하나 일본군의 손에 떨어지게 되면 탑재된 최신 장비를 복제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미국 정부는 이 기체들의 판매를 금지하면서 대신 미 육군을 통해 구입해버렸습니다. 얼떨결에 생각지도 않던 기체를 넘겨 받은 미 육군항공대는 이 경전투기에 P-64라는 제식 명칭을 붙이고 관리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군은 애리조나주의 루크 비행장(Luke Field)에서 NA-68을 받자 마자 모든 무장을 철거하고 훈련기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즉, NA-68은 미 본토 밖으로 나간 일이 없었습니다. 이 기체들은 공중전 교육용도로 쓰이다가 1943년에는 RP-64로 명칭을 바꾸고 연락기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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