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9Y 킷카
2차 대전 말기 미군의 눈을 피해 제작한 제트 전투기로, 미 해군이 제해권을 틀어쥐면서 연료 상황이 극악으로 치달아 귀한 고옥탄가 가솔린이 아니라 등유나 경유 같은, 비교적 넉넉한 연료 또는 아예 대용 연료를 집어넣어도 돌아가는 제트 엔진에 대해 연구를 개시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J9Y 킷카입니다.
기체의 제작은 나카지마 공장에서 진행되었지만 당연히 나카지마 공장도 미군의 폭격으로 날아갔습니다. 킷카가 격납되어 있던 격납고도 폭탄을 얻어맞아 파괴되었으나 격납고 안의 킷카는 거의 파손되지 않았고 이후 제작은 시골 농가로 분산 이전되어 진행되었습니다. 시제기의 기체 조립은 1945년 6월 완료되어 테스트 비행을 위해 키사라즈 기지로 이송됩니다.
킷카 시제기 제작과 별개로 제트엔진의 개량도 계속 진행되어 45년 4월 BMW 003A를 참고하여 Ne-12B보다 좀 더 추력이 올라간 Ne-20 엔진이 완성, 기존의 Ne-12B 대신 이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이 내려집니다. 이 엔진은 키사라즈 기지로 옮겨졌고 45년 6월 조립 완료된 킷카의 기체도 키사라즈 기지로 이송되어 기지 내에서 기체에 엔진을 탑재, 최종 테스트를 후 첫 시험비행 일정을 8월로 잡습니다.
1945년 8월 7일, 킷카는 활주로에서 이륙하여 12분 간의 첫 비행에 성공합니다. 이때는 첫 비행인 만큼 이륙중량을 줄이기 위해 노즈기어 커버와 라디오, 라디오 안테나를 뗀 상태였고 연료 역시 만재한 상태가 아니었으며 랜딩 기어는 내린 상태였습니다. 첫 비행에 성공한 킷카의 다음 테스트는 연료를 만재한 상태에서의 비행시험 실시가 예정되었습니다. 연료를 가득 채운 킷카는 약 3.5톤으로 Ne-20 엔진의 추력으로는 킷카가 이륙하기 힘들어 이륙 시에는 보조로켓(RATO)을 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0일로 예정된 두번째 비행 테스트는 공습으로 연기, 11일에는 악천후로 연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하고 난 6일 후 12일 킷카의 두번째 비행시험이 실시되었습니다. 엔진 전 출력 가동과 RATO 보조로 이륙 활주를 시작했지만 RATO의 연소가 종료되어 가속도가 떨어지자 테스트 파일럿은 이것을 엔진 트러블에 의한 출력 저하로 판단, 이륙을 단념하고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킷카는 제대로 멈춰서지 못하고 그대로 활주로를 이탈한 후 전복되며 기체가 파손됩니다.
킷카를 수리하여 다시 테스트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3일 후인 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제작된 2대의 시제기는 미군에게 접수됩니다. 이 중 1대는 엔진이 제거된 채 우드바 헤이지 센터에서 전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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