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10N 후가쿠
Z비행기라고도 불리는 G10N 후가쿠는 나카지마가 설계에 참가하고, 1943년에 육해군 공동 기획위원회가 발족해서 여기에 군수성도 참가한 체제로 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육해군의 요구성능에 차이가 심하게 나서 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군수성은 도중에 독단적으로 카와니시 항공기에 설계안을 만들게 하고, 게다가 육해군이나 다른 회사는 물론 나카지마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있는 등 개발 체제에 많은 혼선을 빚어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형식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본군 해군에서 주로 기획을 의뢰하고 발주하게 되었습니다.
Z비행기는 미국 본토 폭격까지 시야에 넣은 장대한 계획이었습니다. 일단 계획에 의하면 일본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 본토를 폭격, 그대로 대서양을 횡단해 독일에서 보급을 받고, 다시 돌아왔던 길(또는 당시의 소련)을 폭격하면서 돌아올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는데, 길이 46m (B-29의 1.5배), 너비 63m (B-29의 1.5배), 폭탄 탑재량 20톤 (B-29의 2.2배), 항속거리는 19,400km (B-29의 3배)를 목표로 했습니다.
애당초 이런 대형기에 대한 수요도, 대형기를 필요로 하는 산업도 없는 당시 일본 제국의 항공산업으로는 언감생심이라 생각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기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장거리 항공기에 국한해서는 당시 일본도 세계 수준의 기술을 일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체 중량을 있는대로 줄이고 익면적을 늘려 익면하중을 감소시켜 연료 소비량을 줄이는 방식이어서 실용기에 적용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 있었으며 여압 캐빈의 연구와 신형 착륙 장치의 개발도 병행해서 해야 했습니다.
어찌되었든 개발 자체는 계속 진행되었기 때문에 1943년 나카지마 미타카 연구소 구내에 조립공장 건설이 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1944년 7월 필리핀 해 해전에서 완패하고 절대국방권의 동쪽 빗장을 사수하는 전투인 사이판 전투에서도 패배하는 바람에 사이판이 함락된데다 프로젝트의 최대 지원자였던 도조 히데키 수상은 사직. 방공전을 위한 전투기 개발 우선・개발 기종 삭감 방침에 의해 '이 전쟁에 만들기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된 후가쿠 개발은 중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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