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9Y 킷카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은 귀한 고옥탄가 가솔린이 아니라 등유나 경유 같은, 비교적 넉넉한 연료 또는 아예 대용연료를 집어넣어도 돌아가는 제트 엔진에 대해 연구를 개시했고, Ne-10, Ne-10改, Ne-12, Ne-12B 등의 제트엔진을 개발하며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제트 엔진 연구는 태평양전쟁 전~전시 초반부터 조금씩이나마 이루어졌기 때문에 핵심 기술은 일단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는데, 주 엔진으로 선정된 Ne-12B가 추력이 부족한 관계로 전투기 자체도 최대한 소형 경량화가 요구되었습니다. 킷카의 생김새는 Me 262와 많이 닮아있으나 실제로는 Me 262보다 작고 가벼우며 주익형상도 테이퍼익을 채용하였으며 동굴진지 같은 데 짱박을 때 편하도록 육상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익을 접을 수 있는 등 우수한 설계의 전투기라고 할 수는 없는 반푼이 모방이었습니다. 속력이 대전 후기의 프롭기보다 느리고 항속거리는 Me 262의 반밖에 안 되며, 무장도 약했지요. 실제로는 육군에서 설계한 제트전투기인 Ki-201 카류와 달리 Me 262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독자적인 설계의 전투기입니다. 제트엔진을 달고 일단 실제 비행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기술실증기적 성격이 짙은 기체이며 이 기체의 의의 또한 여기서 나옵니다.


1945년 8월 7일, 킷카는 활주로에서 이륙하여 12분간의 첫 비행에 성공합니다. 첫 비행에 성공한 킷카의 다음 테스트는 연료를 만재한 상태에서의 비행시험 실시가 예정되었습니다. 연료를 가득 채운 킷카는 약 3.5톤으로 Ne-20 엔진의 추력으로는 킷카가 이륙하기 힘들어 이륙 시에는 보조로켓(RATO)을 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0일로 예정된 두번째 비행테스트는 공습으로 연기, 11일에는 악천후로 연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하고 난 6일 후 12일 킷카의 두번째 비행시험이 실시되었습니다. 엔진 전 출력 가동과 RATO 보조로 이륙 활주를 시작했지만 RATO의 연소가 종료되어 가속도가 떨어지자 테스트 파일럿은 이것을 엔진 트러블에 의한 출력저하로 판단, 이륙을 단념하고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킷카는 제대로 멈춰서지 못하고 그대로 활주로를 이탈한 후 전복되며 기체가 파손됩니다.
킷카를 수리하여 다시 테스트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3일 후인 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은 무조건 항복하고 제작된 두 대의 시제기는 미군에게 접수됩니다. 이 중 1기는 엔진이 제거된 채 우드바 헤이지 센터에서 전시 중입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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