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Y 케이운


구 일본군 해군의 시제 육상 정찰기로, 해군은 당시 광대한 중국 대륙에서 육상 정찰기가 없다는 것은 작전에 커다란 지장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함상 정찰기로 C6N 사이운이 개발되고 있었지만, 대규모 점령지를 운영하고 있던 해군으로서는 육상 기지에서 발진하고 임무를 수행할 신형 고속 정찰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 전선과 태평양 전쟁의 초기에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승세를 믿고 개발작업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황이 급변하면서 필요성도 높아지고 더욱 고성능의 기체가 요구되자 결국 시작된 프로젝트가 Y40 프로젝트입니다. 이것이 구체화되어 새로이 개발에 착수한 기체가 바로 육상 정찰기 케이운입니다.


독일에서 수입한 하인켈 He 119 정찰폭격기의 구조를 참고하여 엔진을 동체중앙부에 탑재하여 4m 이상의 샤프트를 통하여 기수에 달린 6엽 프로펠러를 구도시키는 형태를 가졌습니다. 또한 He 119에서 따온 것은 엔진 배치뿐만 아니라, 인입식 래디에이터도 채용하여 장거리 순항시 1개의 엔진만으로 비행할 때는 동체 하부의 방열기를 집어넣고 후방 동체 상단과 주익 앞전에 뚫린 인렛을 통해 엔진을 식히는 방식을 도입하였고, 조종석은 병렬 복좌, 착륙장치는 전륜 식으로 하였습니다. 이런 다양한 신설계들은 당시 일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도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성공여부를 떠나 기술적인 모험이나 도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케이운은 그때까지의 통상적인 일본기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독특한 모양의 기체가 되었고 개발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기술적인 난제를 수없이 해결해야만 하는 긴 작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치 Ha-70 엔진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1944년(쇼와 19년) 6월까지도 원형기의 초도비행이 실시되지 못하자 마침내 해군 수뇌부는 전국의 약화에 따른 긴축을 구실 삼아 개발진도가 부진한 기종에 대한 정리를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케이운도 대상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1944년, 미츠비시에서는 일본 최초의 제트엔진인 Ne-20을 만들어낸 이시가와지마 사로부터 기술을 제공받아 신형 제트엔진 Ne-330을 출시하도록 하였고, 이 실험에는 현재 개발중인 기체에서 가장 제트화가 쉬운 기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기체가 바로 R2Y1 케이운 이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연히 케이운의 개발작업에 대한 취소명령은 기각되어 개발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패망을 몇 개월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있던 R2Y1 프로토타입조차 공습으로 파괴되는 와중에 제트화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으며, 결과적으로 R2Y2 케이운 개량형은 패망 전까지 도면 위를 벗어나지 못 합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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