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5 차이카


I-15는 전간기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소련공군이 운용했던 단좌복엽전투기로, 1933년 가을에 진행된 테스트 비행에서 사소한 사고가 있긴 했으나 전반적인 성능이 유럽 다른 국가의 전투기와 비교했을 때 전혀 꿀리지 않았으므로 당에서는 흡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I-15의 양산이 결정되었으며, 항공기 개발에 큰 공을 세운 폴리카르포프도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을 모면하고 동지들과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사를 세울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받았습니다. 다만 완전히 사면받은 것은 아니었고 폴리카르포프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이오시프 스탈린 사후였습니다.


I-15의 첫 데뷔는 스페인 내전이었습니다. 당시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국민당을 지원하자 소련에서도 공화당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병기와 물자를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I-15도 끼어 있었습니다. 스페인 상공에서 I-15는 이탈리아의 CR.32와 독일의 He 51에 꿀리지 않는 성능을 선보이면서 당을 흡족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갈매기형 주익이 수평선상의 시계를 방해한다는 문제점과 그 외 항공기 자체가 지닌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한 수정지시가 떨어져 I-15의 개량형인 I-15bis를 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I-15에서 개선할 수 없었던 문제도 있어 폴리카르포프는 단엽전투기인 I-16의 개발을 통해 이 부분을 해결하겠다고 답했습니다.
I-15의 경우 당대 최강의 복엽기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이외 비슷한 취급을 받은 기체로는 이탈리아 왕국의 CR. 42가 있습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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