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 200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이 운용했던 4발 중폭격기로, 포케불프 사에서 개발 및 생산했습니다. 1937년 첫 비행할 때 쿠르트 탕크가 조종간을 잡았습니다. 여객기를 베이스로 한 폭격기로, 여객기였을 당시에는 루프트한자에서 운용한 기체였고 26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습니다. 초기 개발때는 미국의 프랫&휘트니에서 만든 호넷 공랭식 성형 엔진을 4개 탑재하였으나, 전쟁이 터지면서 BMW제 엔진으로 바꿨는데요. 프로토타입인 V1이 연료탱크를 추가로 달고 1938년 베를린을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뉴욕까지 시험으로 4000마일을 논스톱 운항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폭탄 장착을 위한 하드포인트가 날개에 장착되고, 폭탄투하 및 방어기총 장착을 위해 동체 아래에 곤돌라가 장착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는 긴 항속거리를 이용, U보트와 함께 북해와 대서양 등에서 연합군 수송선단에 대한 통상파괴작전에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수는 크게 많지 않았지만, 독일 해군항공대의 몇 없는 항공기로 꽤나 짭잘한 전과를 세웠습니다. 탑재한 자체 무장을 이용해서 직접 공격하기도 했지만, Fw 200이 정찰 후 수송선단의 위치와 규모 등의 정보를 U보트에게 알려주는 형태의 연계 전술도 병행했습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의 지상기지 항공기의 항속거리가 닿지 않던 "에어갭"을 주된 활동 무대로 삼아, 연합군 수송선단에 적잖은 위협을 가했습니다.
전쟁 초기 1940년 6월 부터 1941년 2월 까지, 독일측 전과보고에 따르면 Fw 200은 331,112톤의 수송선을 격침시킨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때문에 영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투기를 ('1회용'으로) 캐터펄트로 발진'만' 시킬 수 있는 "캠 쉽" 같은 궁여지책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이 탓에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미국과 영국이 비행장을 세워 P-38 라이트닝을 배치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후 호위항공모함의 투입과 B-24등 장거리 항공기들이 배치되며 "에어갭"이 사라지며, Fw 200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Fw 200은 생존성이 낮다고 보아 주로 초계기로 운용되었으며, 해군이 겨우 얻어낸 Ju 88, He 177, Ju 290같은 신형기체가 대신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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