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즈 H-4 허큘리스


미국 휴즈 항공기(Hughes Aircraft) 사에서 제작한 8발 초대형 수송기 겸 비행정입니다. 1942년 개발에 착수하여 1947년 11월 2일 초도비행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 초도비행 단 한번 이후 바로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본 용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U보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고있던 연합군 대서양 수송선단을 대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연합군 수뇌부는 항상 유보트에게 탈탈 털리는 수송선단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1940년대 초반, 쓸만한 수송기라곤 더글러스(Douglas)사의 스카이트레인 뿐이였고 이 기체는 수송선단을 대체하기에는 적재용적 면이나 항속거리 둘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초대형 비행정의 개발은 시작되었고 코드명 'HK-1'으로 지칭된 모델의 컨셉은 6~8발의 엔진을 장착한, 당시로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덩치를 가진 '하늘을 나는 화물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완성되면 750명의 군인이나 2대의 M4 셔먼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특이하게 금속 프레임 대신 목재와 캔버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나 중량과 엔진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조종계통에서 문제가 빈발했습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유압의 보조를 받는 금속 와이어로 연결된 조종간을 사용하는게 당연한데, 기체 길이가 66m를 넘는 무지막지한 사이즈인지라 기체 조종면의 반응이 터무니없이 느렸고, 조종간 조작과 실제 조종면이 움직이기까지 딜레이가 분 단위로 걸렸다고 하니 사실상 비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렇게 터무니없이 거대한 비행정을 만드는 휴즈를 쓸데없는 곳에 예산 낭비하는 바보 취급하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1945년 8월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시기에 원 목적이였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버렸습니다. 1947년 8월에는 아직까지 비행정을 완성시키지 못한 이유로 청문회가 열리기도 하였지요.
그러던 중, 청문회가 휴정 중인 1947년 11월 드디어 비행정이 완성되었고 휴즈는 초도비행에서 직접 조종하기로 합니다. 1947년 11월 2일, 'H-4 허큘리스'는 롱비치 해변 근해에서 초도비행에 성공하였고 초도비행의 기록은 최대고도 70피트(21m), 최대 비행속도 시속 135마일(217km/h), 비행거리 약 1마일(1.6km)을 기록하였고 세계 최대 날개폭을 가진 항공기라는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다만 조종면 반응성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 비행은 사실 조종간은 움직이지 않고 엔진출력 조절 만으로 이수했다가 착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륙은 했기에 비행 기록으로 인정되었으며 청문회의 칼바람도 비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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