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200/J8M 슈스이


태평양 전쟁 중 일본 제국이 루프트바페의 Me163 코메트의 자료를 기초로 개발하려했던 로켓추진전투기입니다. 기체는 해군, 엔진은 육군이 담당했으며 연구개발은 공동으로 행해졌습니다. 정식명칭은 19시(試) 국지전투기 슈스이입니다. 시험비행이 끝나고 육해군 관계자가 모여 연회를 벌이다가 Me163이 아닌 일본식 이름을 짓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때 평소 하이쿠에 재능이 있던 오카노 카츠토시(岡野勝敏) 해군소위가 '날카로운 검(秋水) 3척으로 이슬을 베어낸다.'는 시를 읊자 만장일치로 슈스이(秋水)라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해군의 기종번호는 J8M, 육군의 기종번호는 Ki-200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은 잠수함을 파견하여 기술과 물자를 교류하였는데 1944년 12월 17일 일본은 伊-29 잠수함을 독일로 보내 Me163 코메트와 Me262의 자료를 받습니다. 이듬해 4월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로리앙 항을 출발하여 7월 14일 일본 점령하의 싱가포르로 귀환합니다. 이후 일본으로 귀환하던 중 7월 26일 바시 해협에서 미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伊-29 잠수함은 격침되었고 독일로부터 받은 자료들도 함께 수장되고 맙니다. 다만 싱가포르에서 이와다니 에이치 해군 기술중좌가 몇몇 자료를 가지고 내렸기 때문에 슈스이는 이와다니 중좌가 지닌 자료를 바탕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와다니 중좌가 지닌 자료는 외형도 3장과 로켓 연료의 성분표 및 취급 설명서, 로켓연료 분사시험 속보, 상황분석서였습니다.


이처럼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슈스이는 완벽하게 코메트를 복제하지 못했고 대신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설계한 부분이 반영되었습니다. 관민합동연구회 석상에서 기체는 해군 주도로, 엔진은 육군 주도로 개발하기로 결정합니다. 해군은 이전부터 로켓엔진을 연구해오던 미츠비시 중공업에 의뢰하였으나 코메트와 같은 무미익기를 설계해본 경험이 없었던 미츠비시는 처음에는 개발이 불가하다고 답했는데, 결국 해군항공 기술창에서 미츠비시와 협력하여 슈스이 개발을 진행 하였습니다.
일본군은 슈스이를 히타치를 비롯한 5개 공장에서 양산하려 했으며 1945년 3월 155기를 시작으로 1946년 3월에 3,600기를 실전배치하기로 계획했으나 당시 폭격에 의해 파괴되던 일본의 공업력을 생각해보면 허황된 계획이었습니다.

Posted by 헬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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